드림카 스토리

Story of Dreamcar

긍정에너지로 홀로서기 전대인 씨 이야기

  • 2023.04.20
장애유형 : 지체장애, 318호 수리내역 : 디스크 브레이크, 로우암 외, 긍정에너지로 홀로서기, 드림카 318호, 전대인 씨 이야기혹한이 찾아와 전국이 얼어붙은 오후, 춘천에 사는 전대인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전화를 받는 대인 씨의 목소리에는 안부를 물어오는 상대를 향한 반가움이 뚝뚝 묻어났습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걱정이네요.” 말수는 적었지만 가까운 동네 이웃처럼 따스한 말투로 대화하는 내내 화기애애함을 전해준 대인 씨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 형제간의 우애로 채워진 유년 시절,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인제군에서 대인 씨는 2남 3녀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연달아 태어난 4명의 동생과 어울려 자라는 동안 장애의 어려움이나 다른 점을 잘 못 느끼고 살았다고 합니다. “태어나고 한 살쯤, 걸음마를 배워 조금씩 걷던 시절에 소아마비에 걸렸어요. 그땐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나고요. 제 몸이 조금 다르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열 살 무렵에야 깨달았죠.” 다복한 형제들 덕분에 외로움 없이 자랐다는 대인 씨.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씩씩하게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대인 씨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워낙 깊은 시골에 살았어요. 학교가 매우 멀었죠. 그때 집에서 학교에 가려면 징검다리가 놓인 강을 건너야 했어요. 그런데 목발 짚고 돌다리를 건너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다리가 불편하니 집에서 소일거리를 도우며 자랐는데, 학교에 다니지 못한 건 지금도 조금 아쉽긴 합니다.” 비록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대인 씨의 마음엔 원망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부족한 만큼은 형제간의 우애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시골에 살아서 주변에 친구를 사귈수 없었고 대부분 시간은 집에서 보냈지만, 형제들 덕분에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던 소중한 유년기입니다. 대인 씨는 여전히 인제를 떠올리면 가족들의 도움으로 지붕 위에 올라가 밀짚으로 지붕을 덮으며 내려다보던 시골 마을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지금도 인제에는 옛 친척들과 가족들이 살고 있어서 한 번씩 방문하게 되는 푸근한 고향이기도 합니다.#시계기술자를 꿈꾸며, 그랬던 대인 씨도 한때는 성공한 기술자의 꿈을 품은 적 있습니다. 언젠가 서울에 상경해 기술자로 이름을 알리고 기반도 다지고 싶었다는 대인 씨. “어릴 적에는 집에서만 지내도 답답함을 몰랐지만, 성인이 되면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막연하게 서울에서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죠. 일단 집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던 순간의 설렘을 대인 씨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향 집이 있던 인제군과 달리 부산에는 일자리가 많았다고 합니다.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일을 배우고 동료들도 생겼습니다. 이후 경기도 광주로 옮겨 새로운 일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참 공장에서 일을 배우며 보람을 많이 느꼈죠. 그런데 당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어요. 그때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서울 노량진에 있던 학원에서 시계기술을 배웠습니다. 열심히 배운 덕분인지 금방 취직도 됐어요.” 그렇게 서울에서 시계기술자로 일하던 대인 씨는 경기가 나빠지자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이후 춘천으로 거처를 옮겨 지금까지 지내는 중입니다. “춘천에 오면서 작은 시계방을 차릴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배운 기술과 감각을 살려 일하는 게 저랑 잘 맞았으니까요.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로 결국 시계방을 차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시계방을 차리고 실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은 꿈은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일흔에 가까워진 대인 씨지만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호탕하게 웃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씨 덕분에 대인 씨의 꿈은 어쩐지 가능성이 충분한 듯합니다. #드림카 318호 이야기, 대인 씨가 이처럼 긍정적인 데는 자동차가 한몫했습니다. 평소 목발을 짚고 다니기에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웠던 대인 씨는 성인이 된 이후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하면서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친척들을 만나러 다니고, 필요한 물품을 사러 마트나 병원에 다니기만 해도 즐거웠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대인 씨의 홀로서기는 그리 외롭지 않았습니다. “춘천으로 이사 온 다음 해에 면허를 땄는데 이동이 자유로워지니 인간관계가 많이 넓어졌죠. 만약 자동차가 없었다면 홀로 지내면서 우울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어요.” 동네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모임에 참여할 때도 자동차는 필수입니다.“한 달에 두 번 정도 복지관에서 모임이 있어요.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고요.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고 바람을 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웃음이 많아져요. 복지관에서 알게 된 장애인 친구들과 복지관 직원들 덕분에 홀로 사는 삶에 활기가 생긴 것 같아요.” 이러한 대인 씨에게 자동차는 애인이자 친구입니다. 대인 씨의 자동차는 취득한 이후 어디든 그의 다리를 대신해 달렸습니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돼서인지 운전할 때마다 브레이크에 소음이 심했습니다. 겨울철 거리에 뿌려진 염화칼슘으로 인해 차의 밑부분에 부식 또한 심했습니다. 단거리 이동은 괜찮았지만 한 번씩 장거리 이동을 하는 건 불안해서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인 씨의 긍정적인 성격을 지탱해주던 자동차는 다행히도 드림카 프로젝트를 만나 꼼꼼히 정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타면서 낡은 부분을 모두 교체해 안전한 차량으로 새 단장을 마쳤습니다. 공업사에서 차량을 받아 한 바퀴 달려본 대인 씨는 기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최근 들어 운전할 때마다 조마조마했어요. 차가 오래 돼서 갑자기 멈춘 적도 있고, 소음도 심하고 크게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요. 드림카 프로젝트 덕분에 새 차를 한 대 얻은 느낌입니다!” 대인 씨는 튼튼해진 자동차를 타고 새해에는 고향에 있는 친척들을 뵐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물러가면 복지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들이도 떠나고 싶다고 계획을 알려줍니다. “드림카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원해주신 삼성화재애니카손사와 한국장애인재단에 감사드립니다!” 대인 씨의 일상에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 차도록 드림카가 늘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