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 스토리

Story of Dreamcar

힘차게 날아오르다 김용호 씨 이야기

  • 2023.04.20
장애유형 : 지체장애, 312호 수리내역 : 프런트 로워 암, 파워스티어링 기어 외, 힘차게 날아오르다, 드림카 312호, 김용호 씨 이야기‘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위기 속에서 위험한 순간만을 포착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회의 순간을 포착해내기도 하는데요. 여기, 스스로 기회를 포착하고 쟁취해낸 주인공이 있습니다. 김용호 씨의 이야기 만나볼까요?, # 용호 씨의 홀로서기, 용호 씨는 태어나서 백일이 조금 지났을 때 열병을 앓았습니다. 그로인해 소아마비 장애가 생겼고 치료에 전념하느라 학업에 집중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에 전념하기보다는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학교를 다녔는데 이후론 몸이 아파서 계속 병원에 누워있었어요. 나중에 다시 학교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3년이나 훌쩍 지나버려서 어렵겠더라구요. 그때 집안 상황도 많이 안 좋았구요. 그냥 독학을 선택했어요. 모르는 건 동네 형과 누나들한테 물어가면서 공부하다가 부산에 있는 기술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용호 씨는 기숙시설이 있는 부산의 기술원에 들어가면서 또래보다 일찍 가족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때 용호 씨 나이는 갓 스물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한 30여 년 전만 해도 TV랑 라디오가 널리 보급되면서 수리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주변에서 그러더라구요. 그쪽 기술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술원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막상 가보니까 이미 수업을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됐더라구요. 그쪽에서는 따라오기 힘들 테니 그냥 돌아가라는 거예요. 근데 오기가 생겨서 무작정 매달렸어요. 일주일 해보고 못 하겠으면 가겠다구요. 그렇게 들어가서 1년을 쭉 버텼죠.”기술 하나를 제대로 배워두면 평생을 먹고 산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가 봅니다. 용호 씨는 그때 이후로 쭉 전자제품 수리 분야에서 틈틈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꾸준히 일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찾아주는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음악은 나의 힘, 누구에게나 첫 월급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용호 씨 또한 생애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고 받았던 첫 월급에 대한 기억이 남다릅니다. “그때, 월급이 참 적었죠. 한 11만 원정도 됐던 걸로 기억해요. 제가 마이크 잡고 얘기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전축을 샀었어요. 한 달에 만 얼마씩 내는 걸로 해서 할부 개념으로 산거죠. 음악을 워낙 좋아하다보니까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 휠체어럭비 경기 사진, 음악을 좋아하는 용호 씨는 음악다방에서 DJ 보조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송창식과 김수희, 혜은이를 좋아했던 그는 가수의 꿈을 꾸기도 했는데요. 비록 현실과 타협하면서 그 꿈은 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노래 부르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다보니까 가수라는 꿈만 쫓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지금 버스킹을 하면서 못 다한 꿈을 펼치고 있기는 합니다. 체육관이나 요양원, 관공서 같은 곳에 가서 노래 불러요. 이렇게라도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휠체어럭비, 음악이 용호 씨에게 삶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면, 휠체어럭비 는 새로운 삶을 선물해줬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장애인이 운동도 할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종목이 다양할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못했고요. 한 15년 전 쯤, 제가 개인적으로 좌절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 우연히 장애인이 있는 곳에 봉사 활동을 하러 갔었는데 근처에 체육관이 있었어요. 거기서 휠체어 타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는데 신기해서 주변에 막 물어봤죠. 저게 뭐냐, 나도 할 수 있냐,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게 휠체어럭비였어요.”호기심으로 시작했던 휠체어럭비는 상상 그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온 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 오늘만 하고 내일은 안 해야지 했을 정도였어요. 근데 신기한 게 다음 날 되면 또 제가 그 운동을 하고 있더라구요. 아마 운명이었나 봐요.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운동을 아예 안 해봤기 때문에 제가 운동신경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꾸준히 하다 보니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부산대표로 나갈 수 있게 됐죠.” 용호 씨는 휠체어럭비를 시작한지 1년 만에 신인상을 탔습니다. 내친김에 아이스하키라는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게 됐고, 현재는 두 가지 종목을 번갈아서 열심히 매진하고 있습니다. # 드림카 312호 이야기, 현재, 용호 씨가 운행 중인 자동차는 이전에 견적을 받았을 때 당장 수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엔진쪽 소음이 많아 교체가 필요하며, 브레이크 또한 제동거리가 길어서 운행이 불안하단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 모든걸 한꺼번에 수리하는 일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보통은 운동 연습하러 갈 때나 일하러 갈 때 제일 많이 사용하는데요. 특히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전자제품 수리일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해서 일을 해야 하잖아요. 여기저기 막 다녀야되는데 운전할 때마다 불안하니까 의뢰가 들어와도 마음 편히 막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참 답답했죠.” 그때 용호 씨에게 빛이 되어준 게 바로 드림카 프로젝트였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던 게 뽑히면서 용호 씨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꽤 많이 놀라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이런 좋은 드림카 프로젝트에 뽑히다니 정말 복 받았다고 축하를 많이 해주시더라구요. 이게 진짜 무슨 일인가 얼떨떨 했는데 실제로 수리를 다 받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새 차를 탄 것처럼 승차감이 너무 좋아요. 원래 자동차를 타면 삐거덕 소리가 기본으로 났었거든요. 그런 것도 전혀 없어졌어요. 몰랐는데 공업사 직원분 말로는 차체가 내려 앉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부분도 수리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용호 씨는 고향이 전라도이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남 땅끝마을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튼튼하게 변신한 자동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꼭 땅끝마을에 여행을 가겠다며 희망찬 계획을 밝혔는데요. 이런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삼성화재애니카손사와 한국장애인재단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전에는 잠을 잘 못 잤어요. 다음 날, 자동차 타고 이동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내일 운전 잘할 수 있을까 그 걱정하면서 밤잠 설치고, 아예 지인들 자동차를 빌려야 하나 고민한 적도 많았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런 걱정 자체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잠을 잘 자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수리 끝나고 자동차 찾으러 가니까 공업사 직원분이 그러더라구요. 드림카 프로젝트 담당자로부터 수리 끝나고 세차까지 잘해서 넘겨주라고 부탁 받았다구요. 끝까지 세심한 부분마저 잘 배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시던 용호 씨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을 위해 희망의 메시지도 전해 주셨습니다. “요새 코로나19로 인해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해서 언젠가 지금을 돌이켜보며 그땐 그랬지 회상하며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모두 힘내세요.”, 종횡무진 도전을 이어나가는 용호 씨와 함께 드림카도 힘차게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