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 스토리

Story of Dreamcar

세상과의 소통 진형철 씨 이야기

  • 2023.04.20

장애유형 : 지체장애, 263호 수리내역 : 캘리퍼-브레이크, 웜기어 외, 세상과의 소통, 드림카 263호, 진형철 씨 이야기비가 그치고 뭉게구름 가득한 여름날, 목포에 위치한 진형철 씨 집에 방문했습니다. 집안 곳곳에 가족사진과 중학생 아들의 성장 과정이 촘촘히 걸려있는 사진을 보니 사랑 가득한 집안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야간근무를 하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미리 준비도 못 했네요.” 머쓱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형철 씨는 밤새 근무를 하고 왔음에도 표정이 밝습니다. 형철 씨가 이토록 밝은 이유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 운명적 인연이 단란한 가정으로, 전남 영암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형철 씨. 형제가 많고 터울이 큰 형과 누나들의 사랑으로 어릴 적부터 밝고 활발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형철 씨에게 아픔이 있다면 3살 무렵 앓게 된 소아마비였습니다. “3살 무렵에 소아마비를 앓고 하지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이후 열심히 운동해서 다리를 조금 절긴 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대학교 때는 등산 동아리에서 활약할 정도로 다리의 불편함을 극복했던 형철 씨였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그래픽, 전자출판 쪽으로 일하며 활기 넘치게 살아오던 형철 씨.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살짝 털어놓습니다.“어느 날 출근길 운전 중에 신호등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자동차에서 운전하는 여성이 보였어요. 그런데 너무 예쁜 거예요. 눈이 자꾸 가고요. 그렇게 출근을 했는데 이후에도 계속 회사 앞에서 그 여성을 자꾸 마주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제가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분이었어요. 그래도 말 한마디 못 걸고 오며가며 바라만 봤죠. 그러다 친구가 누굴 소개해준다고 해서 나갔는데 그 분이 나와 있더라고요. 정말 운명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운명의 여인이 지금 형철 씨의 아내입니다. 첫 눈에 반해 운명처럼 만난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소중한 아들도 얻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사업을 시작해 남부럽지 않은 행복을 누려온 형철 씨는 예전 이야기를 하는 내내 꿈꾸듯 즐거운 표정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맞벌이 중이라 아들하고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들이 철이 든 건지 서운한 내색을 안 해요. 아침, 저녁으로 잠깐 얼굴 볼 때면 농담도 어찌나 웃기게 하는지. 아내와 아들은 제 삶의 활력소에요.” # 휠체어 생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지만 특별한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하던 형철 씨는 마흔이 넘어가며 양쪽 다리에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척추에 서서히 진행된 협착으로 인해 통증은 나날이 커졌고, 참을 수 없는 시점에 병원을 찾았을 때는 늦었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업 하느라 바빠서 몸을 돌보지 못했어요. 그동안 협착이 많이 진행됐고 수술해도 두 다리로 걷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였어요. 결국 40대 후반부터는 휠체어 생활을 시작했죠.”형철 씨는 처음 휠체어에 탔을 때의 낯선 공기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갑자기 타기 시작한 휠체어에 익숙지 않아 수시로 넘어지기도 했고, 휠체어를 타고 집 앞 공원에라도 가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사실 제 마음이 문제였죠. 계단이 있으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되고, 자꾸 넘어지면 연습하면 되는데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됐어요. 휠체어를 타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제 마음이었죠.” 그 마음을 떨치기 위해 형철 씨는 매일 집 근처 공원과 인도를 다녔습니다. 모두 자신만 보는 것 같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익숙지 않은 휠체어 조정을 연습하고, 활기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날들입니다. #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즐거움, 형철 씨는 사업을 접었지만 다시 사회생활에 도전하기 위해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 공부도 했습니다. 이때 학원에서 만난 이들이 제안한 일이 장애인 행정도우미였습니다. “학원에서 만난 분들이 제게 행정도우미 일을 제안하더라고요. 사업도 했었고, 자격증을 여러 개 땄으니 복지관에서 다른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라고요. 주변 분들의 제안이 제겐 새로운 삶을 열리는 계기가 됐죠.” 형철 씨는 복지관에 문의해 행정도우미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른 장애인들에게 좋은 안내자로서 행정도우미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행정도우미 일 외에도 미술을 전공했던 형철 씨는 복지관에서 장애인이 참여하는 미술수업도 진행하고,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간단한 악기 연주도 가르쳤습니다. 형철 씨에게 그림을 배운 장애인들이 전국장애인사생대회에서 MVP에 선정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결실입니다. 이후 형철 씨는 사회복지 전공으로 대학원에도 진학했습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즐거움을 경험해서일까요?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일을 하고자 마음먹은 형철 씨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이동차량지원콜센터(이하 센터)에서 콜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콜택시가 필요한 분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필요한 사항을 안내하는 일입니다.“가끔 콜택시를 부르는 분들 중에 제 이름을 대고 꼭 저와 상담해서 배차를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과는 차량배차와 관련한 용건을 주고받으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답답했던 속내도 털어놓으며 잠시 대화를 해요. 저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나 모두 장애인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즐겁습니다!” # 드림카 263호 이야기, 주어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매사에 소통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는 형철 씨. 그에게 자동차는 소통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제가 출장을 많이 다녀요. 전남 지역에서 장애인 이동지원을 하는 센터에 방문해 불편사항을 들어보고 함께 문제해결을 논의하는 자리가 많거든요. 그런 자리가 자주 있고 늦은 시간까지 일이 계속되지만 이렇게 소통하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지요.” 복지관에서 행정도우미로, 현재 콜센터 담당자로 일하는 모든 순간에 형철 씨 곁에는 자동차가 함께 했습니다. 2007년부터 12년째 타온 형철 씨의 자동차는 그의 발이자 소통하기 위한 창구입니다. 일상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는 사용한지 10년이 넘으면서 잔고장이 많아졌습니다. 언제부턴가 브레이크 밀림 현상이 심해지고, 수시로 시동이 꺼지는 통에 아찔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가슴 철렁한 순간이 여러 번 반복되니 형철 씨는 운전대를 잡는 게 두려웠지만, 드림카 프로젝트를 만나 말끔하게 해결됐습니다. 시동 꺼지는 증상이 사라지고 새 차같이 부드럽게 운전이 가능해졌습니다. 무엇보다 형철 씨는 정비를 맡아준 정비소 직원에게 감동받은 일도 있었습니다.“자동차에 여기저기 잔고장이 많았는데 안전을 위해서 정비소 직원분께서 정말 꼼꼼하게 수리를 해주셨어요. 또, 세차를 해주신다며 퇴근시간이 지나서까지 제 자동차를 봐주셨습니다.” 이런 계기로 정비소 직원들과 소소한 친분도 생긴 형철 씨는 드림카 프로젝트를 지원해준 삼성화재애니카손사와 한국장애인재단에도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낡고 오래됐지만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데 절실한 자동차를 튼튼하게 고쳐주셔서 삼성화재애니카손사와 한국장애인재단, 정비소 측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과 따뜻한 소통을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삼성화재애니카손사 목포대물센터 서정룡 센터장, 드림카 263호 주인공 진형철 씨, 삼성화재애니카손사 우수협력업체 강성진 이사, 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하는 형철 씨와 드림카도 함께 달리겠습니다.